책을 안 읽었던 건 아니지만.. 뭔가 글을 쓸만한 책이 없었다.😅
그러다 읽게 된 파친코.
오래전에 외국에서 유명한 책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후 드라마로 제작이 되고, 그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더 큰 화제가 된 책이다.
그래서 더 빌리기가 어려워졌었는데, 어쩐지 타이밍이 맞아 읽을 수 있었다.
드라마 영상을 짧게나마 본 적이 있어서인지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의 모습으로 그려진 게 과연 좋은 일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며, 선자라는 인물의 부모, 자식, 손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명백히 선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신기하게 시간이 지나며 노아의 이야기, 모자수의 이야기, 솔로몬의 얘기로 내용이 옮겨갈 때면 그들 하나하나에게도 몰입을 하게 된다.
책 1권까지는 선자의 이야기가 주로 나오고, 아마도 드라마에서 보여준 내용이 대부분이라 새롭다는 느낌은 덜했다.
2권에 선자의 자식들 이야기로 흘러가며 꽤나 스펙타클 해지며 엄청난 몰입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을 담당하면서, 이 글을 쓰게 만든 이는 노아.
노아는 선자와 한수 사이의 아들이다. 선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한수는 두 집 살림이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선자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한수를 떠난다.
이후, 이삭이 나타나 선자의 아이까지 책임을 지겠다며 함께 떠나자고 하여 선자는 일본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고, 노아는 이삭을 아버지로 알고 성장한다.
원체 병약했던 이삭은 일본인들의 핍박으로 오래 살지 못하지만, 노아는 이삭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선자가 일본에 왔을 때에도 그 곁을 맴돌던 한수는 이삭의 죽음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선자의 가족을 돕고, 공부의 재능을 보이는 노아를 자랑스러워하며 최선을 다해 후원한다.
선자의 가족들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한수가 노아의 친아버지일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는데, 과연 노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노아도 거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민족이라고, 부모님의 친구라고, 그렇게 많은 돈을 후원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순진한 사람이었을까? 뭐 어쨌든, 그렇게 물심양면 도움을 받아 노아는 와세다 대학에 가게 되고,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다가 갑작스럽게? 한수가 본인의 친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자취를 감춘다.
노아는 엄마인 선자에게 울분을 토해내고, 야쿠자의 핏줄인 자신이 부끄럽다고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그가 성장하고 학교에 간 건 그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야쿠자가 그렇게 혐오스러운데 그가 베푸는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며 살지 않았나?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자취를 감춘 노아는 본인의 이름도 바꾸고 출신, 심지어는 국적까지 바꾸며 새로운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노아는 성장기에도 차라리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며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정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그 종착지가 결국 파친코였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하고 발버둥 치며 살았지만 결국은 파친코. 일본인으로 정체를 숨겼지만, 그래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루트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거짓 정체성을 가지고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살아내며 가정을 꾸려 나가던 노아. 한수는 결국 노아를 찾아내고, 선자를 노아에게 데려다준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 상상해 왔다고 고백한 노아는.. 선자에게 자신의 가족들과 주변인들 모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며, 본인이 고향집으로 찾아가겠다고 차분히 말해서 선자를 돌려보낸다. 10년간 노아를 위해 기도하고, 늘 애끓는 마음으로 살아온 선자는 한수에게 이제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말하지만, 본인을 돌려보낸 직후 노아가 권총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노아가 과연 어떻게 할까. 가족을 모두 데리고 도망을 갈 것 같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하던 차에 냅다 죽어버렸다는 내용이 나와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노아가 얼마나 고난 속에 태어난 아이인지 선자의 인생을 따라가며 같이 느껴왔던지라 비현실적으로 허무한 감정도 느꼈다. 노아가 꾸린 가정은 뭐였을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살을 택할 수 있었을까. 허망한 마음이 크다. 선자 역시 노아에게 치욕을 견디는 법을 어떻게 가르쳤어야 하는 걸까 자책하고 괴로워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자기 자신의 정체가 너무 치욕스러웠던 노아는 망설임 없이 자살한다. 그의 인생은 대체 뭘까. 그는 뭘 위해, 뭐 때문에 그 세월을 살아낸 걸까. 아직도 답을 찾을 수 없고,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만 한다. 책의 말미에.. 노아가 잠적해 있던 10년 동안에도 이삭의 묘를 매달 찾아왔다는 게 밝혀지고, 선자는 또 마음 아파하는데..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을 뿐이다. 노아는 어떤 사람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인건지.. 한동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인물은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선자와 이삭의 아들, 모자수의 아들이다. 즉, 선자의 손자다.
독자들은 선자의 어린 시절부터 따라왔기 때문에 선자에게 어느 정도 친밀함을 갖고 있는데, 솔로몬에게는 선자가 그저 머나먼 주변인물 중 하나일 뿐이다. 솔로몬의 이야기가 주로 나올 때,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선자를 보면 신기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 주인공인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겐 그냥 배경과 같은 지나가는 주변인물이라는 점이 참 현실적인데 받아들이기가 어렵달까..ㅎㅎ
성실하게 일을 해온 모자수 덕에, 선자도 좋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고, 솔로몬도 넉넉한 환경에서 사치를 부리며 자랐다. 그 시대에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말 다했지 뭐. 솔로몬의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하나. 하나는 모자수의 애인 에쓰코의 딸이다. 선자와 이삭의 아들인 모자수는 무조건 선하고 순박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데, 파친코에서 어려서부터 일하기 때문인지 묘하게 모범적이지는 못하다. 그의 애인인 에쓰코부터가 불륜으로 이혼당한 여자다.;; 그녀의 딸 하나 역시 어린 나이지만 비행 청소년이 되어 임신을 한 채로 에쓰코 앞에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솔로몬과 얽히게 된다🤦🏻 정말 이 부분에서 어찌나 조마조마했는지.. 하나가 불량한 것도 문제지만.. 아버지의 애인의 딸과 엮이는 막장 스토리만은 좀 피해 줬으면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최악의 시나리오인 하나가 솔로몬의 아이를 임신하는 일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하나를 마음에 품은 상태긴 했으나 솔로몬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국 유학을 하고, 한국계 미국인인 피비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하는데, 파친코, 야쿠자와 연관된 아버지를 걸고넘어지는 상사들에게 이용만 당한 채 해고당한다. 진실은 결코 알 수 없지만, 솔로몬에게는 훌륭하고 선한 사람들인 아버지 모자수와, 그의 친구들이 대외적으로는 불량한 사람으로 비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친코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피비와 이별한다. 솔로몬의 아버지인 모자수부터 일본에서 자라고 태어났으니.. 솔로몬 역시 일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뿌리가 한국인일 뿐. 그래서 피비와 대화를 할 때에도 묘하게 일본 편을 들게 되며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서 또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들은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자의 자식부터는 당연한 거다. 장성하기 전까지는 한국에 가본 적도 없다. 이 책에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시기에 한국이 아닌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핍박받는 한국인들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일본 내에서 차별당하는 한국인들을 그릴 뿐이다. 그들에게 한국인의 얼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쩐지 섭섭한 감정이 들지만 그들은 한국인이 될 수 없다. 그저 어떤 사정 때문에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그건 주제넘은 생각이다. 그들은 그냥 일본인이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노아가 그랬듯이. 똑같은 생각이, 말이, 자꾸만 길어진다🤦🏻
강인하고 독립적으로 한 시대를 살아온 선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더 그들과 멀게 느껴지는 씁쓸함을 남기게 됐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만으로 꽤 좋은 독서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는 이삭의 죽음을 각색해서 친일 논란이 나는 모양이다. 아직도 한국과 일본은 적대적인데.. 이 책을 읽고 한국인인 나는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답답함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왜 그 모든것을 겪고도 일본이 가해자라는 생각을 못하고 무심결에 그들 편을 들게 되는 걸까. 좋은 일본인도 있었기 때문에?? 개인에 의해 그 체제까지 긍정하는 게 가능한건가? 그 많은 일을 겪고 묵묵히 살아가는 선자의 강인함만 기억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본인에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이다. 어쩌면 위험할 수 있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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